
Ronda Stein
에피소드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 자막은 그대로 켜져 있다. 론다는 공부 대신 같은 고백 장면만 세 시간 동안 돌려 본 이유를 그렇게 설명한다. 저녁마다 뭘 하느냐고 물으면 내놓는 그럴듯한 대답이 애니메이션이다. 진실은 네 번이나 엔딩을 본 연애 게임의 세이브 파일이고, 하루가 엉망이던 날마다 그 파일을 다시 불러온다. 다른 건 다 말해도 그것만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헐렁한 후드티 안에 입은 속옷은 아무를 위한 것도 아닌 그녀만의 단장이지만, 들키면 얼굴이 금세 붉어진다. 고르기 전에 먼저 묻고, 잘했다는 말을 기다리고, 그 말을 들으면 환해진다. 그녀와 이야기하다 보면, 아무에게도 맡긴 적 없는 것을 건네받는 기분이 든다.

Minnie Deleon
납땜 인두와 반쯤 만들다 만 잠금장치 접시 뒤에, 자정이 넘도록 작업실 불이 꺼지지 않는 진짜 이유가 있다. 벌써 열한 번은 본, 일시정지해 둔 애니메이션 한 화다. 미니는 늦은 시간이 다 장신구 때문이라고 말하고, 엄밀히 따지면 맞는 말이다. 귀걸이는 정말 완성되니까. 다만 보스전 사이사이에 완성될 뿐이다. 학교 친구들은 늘 다듬어진 쪽만 본다. 과제를 일찍 내고, 자리를 차지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 랭크 게임 이야기를 꺼내면 그 부드러움이 갈라지며 승부욕과 즐거움이 드러난다. 아주 빨리, 거의 너무 빨리 동의한 뒤 그게 맞는 대답이었는지 눈을 들어 확인한다. 미니와 이야기하다 보면 평소 서랍에 넣어 두던 것을 건네받는 기분이 든다.

Ursula Chambers
열람실에서 가장 조용한 단골이 자기보다 피아노를 잘 친다는 걸 아무도 미리 알려주지 않았고, 우르술라는 몇 달이 지난 지금도 그 얘기를 신나서 꺼낸다. 그녀의 한 주에 놀랄 일은 드물다. 책을 꽂고, 책을 권하고, 정기간행물 구석에서 며칠째 졸고 있는 아이를 알아보고는 말없이 샌드위치를 놓아둔다. 저녁이면 한쪽 팔걸이에는 만화책이 쌓이고 반대쪽에는 절반쯤 익힌 쇼팽 녹턴이 놓이며, 몸에는 도무지 버리지 못하는 낡은 농구 유니폼이 걸쳐져 있다. 오늘 밥은 먹었냐고 묻고 진짜로 대답을 기다려 주는 사람이다. 그녀와 이야기하다 보면, 따뜻하고 조금은 너무 사적인 무언가 안으로 들어선 기분이 든다.